IMC 병원 직원분들께,
안녕하신지요?
내일이면 IMC 병원을 떠나 한국으로 귀국 예정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한 귀중한 경험과 잊지못할 추억을 가지고 갑니다.
여러분 모두의 행복과 IMC 병원, 몽골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 합니다.
2014.10.31.
김영태 드림.
이렇게 몽골어로 써서 IMC 병원 전 직원에게 보내고 가야 되겠다고 오늘 오후에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
난생 처음 몽골 땅에서 병원 개원 전후에 병원 구조, 진료시간, 수술실 준비, 병실 번호 결정, 회의 종류와 시간, 전자의무기록부 훈련, 환자 식사 등 병원을 초기셋팅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자문 역활도 하고, 진료도 하고, 강의도 하면서, 이런 저런 일이 많았고, 당연히 속 상한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있었다.
모국어가 몽골어이고, 제일 외국어가 러시아어인 나라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써야 되는 상황이 힘이 들었다.
나만 힘든게 아니라 모든 의사와 간호사, 행정 직원들도 소통의 어려움이 컸다. 영어를 하는 직원은 상관이 없으나 영어를 모르는 경우, 소통 자체가 안되니 가르칠 수도 없었고, 일을 시킬 수도 없었다. 산부인과 의사 6명 중 3명은 영어를 못 한다. 산부인과 외래 간호사 4명 중 3명은 영어를 못한다. 일반 직원의 경우는 영어 구사 직원 비율이 더 떨어졌다. 회의나 강의를 할 때는 가끔 통역을 이용했다. 내가 영어로 강의를 하면 내 곁에서 한 명이 몽골어로 통역을 하곤 했다. 강의 시간은 항상 배 이상이 걸리고, 통역이 제대로 되는 알 수도 없었다. 청중이 알아 듣는지도 알 수 없었다.
수술하면서 얘기를 하면, 의사도 간호사도 못 알아 듣는 경우도 있었다. 수술 중 급하면 내가 했고, 하면 되기는 하지만 항상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래도 반복되면서 몸으로든, 말이 아닌 소리로든 소통이 되면서,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외래에서 비슷한 유형의 환자를 보면서 문진하고, 진찰하고, 설명하고, 검사하고가 반복이 되면서, 나를 도와 주는 몽골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눈치가 생겨서 진료 시간도 점차 짧아지고 있고, 진료 흐름이 잡혀가고 있어서, 지금은 많이 편안해 지기는 했다.
토픽이나 강의나 논문 초독회를 주당 4-5번을 아침마다 몇달을 계속하니 전공 관련 지식이 조금씩 느는것 같아 보기가 좋았다. 대부분의 젊은 의사들의 배우고자하는 강한 열의가 느껴지니, 가르치는 재미도 있고 책임감도 생겨서 내 스스로 준비를 많이 하고 미팅에 참석하였다.
개중에는 영어도 안 되고 공부는 하기 싫고 자존심은 있고 나이는 들고 해서, 반감만 생겨서 어쩔 줄 모르는 의사도 몇 있다. 할 수 없지, 어떻게 모든 말을 강가로 데리고 가고, 물을 먹일 수 있는가?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자기들만 안하면 되는데, 자기네 젊은 후배 의사에게 한국의료진에 대하여 불평을 하고 배울게 없다는 둥 험담을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영어도 못하고 미팅에도 참석을 안하고 발표 준비도 시원치 않고 불평만 하니, 결국은 배움터에서 멀어지고, 나도 관심을 젊은 의사들에게로 집중하게 되었다.
배움에 목 말라 하는 젊은 의사들, 그들의 꿈이 이루워 지도록 도와 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가 항상 어려운 문제였다.
나라도 몽골 말을 잘 했으면 상황이 바뀌였을 턴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의료 지원은 기간이 5년 이상이 되야 의사 소통도 되고, 그래서 의료 지식과 기술 전수도 되고, 인간적인 이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규모는, 여러 변수가 있지만, 몽골에서는 적어도 300병상 이상 정도는 되어야 하지 싶었다.
의료원 파견 의사 수도 가능한 많을수록 좋고.
2013년 11월 중순에 도착해서 건설 현장을 보면서, 구조 변경에 관한 몇가지 내 의견을 선선히 들어 준 경우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건설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가 그랬다. 내 의견을 묻기만 했지, 대부분의 처리는 자기네 방식으로, 자기네 생각대로 했다. 몽골제국의 자부심인지, 자존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쓸데 없는 일에 신경을 쓰고 정작 해야 할 일은 모르거나 이해가 부족 했다.
IMC병원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해야하는가? 하면 임신 언제까지 할 것인가? 를 갖고 자문을 구하러 왔다. 정부의 행정 지침은 있는가? 있다면 따라야 되고, 반드시 합법적인 치료를 해라, 임신 중기가 넘어 가면 수술 합병증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후기 임신 유산은 하지 마라 등등 얘기를 하고 나서 확인 해 보니, 수술 기구가 준비 안 되있었고, 어느 수술 방에서 할 지, 어떻게 마취를 해야 할 지, 적출물 처리, 간호사 훈련, 의사 훈련 등이 안 된 상태였다.
초음파 검사를 할 줄 모르는데, 기계가 비싸고 최신형이고, 독일제품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복강경 수술을 할 줄 모르는데 독일제 최신형 복강경 수술 셋트를 두개, 세개 사 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병원 건물 깨끗하고 병실 넓으면 무슨 소용있는가?
자기네 의료진의 수준을 정확히 알고, 개원 전부터 어떻게 훈련시키고, 진료수준을 향상 시킬 방안이 최우선이었다.
물론 외양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병원은 환자 중심이어야 하고, 치료가 최우선인 곳이다.
환자의 안전이 우선 순위 일위인 곳이다.
병실 테레비 무엇이 좋은가? MRI, CT는 어디것이 좋은가? 광고 효과가 있으려면 무얼 사야 된다는 생각이 우선 순위 일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한 예에 불과하다.
3월 중순 한국으로 출장가기 전까지 가족분만실의 필요성에 대하여 적어도 내가 다섯번 이상 누누히 강조를 했음에도, 구조 변경은 불가하다며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깨끗히 포기를 했다.
그런데 출장 다녀오니 가족분만실을 만들었다. 문제는 누가 시켰는지 산후 병동에 있는 병실 두개를 터서 커다란 특실 가족분만실도 만들어 놓았다. 분만장 내에 가족 분만실 두개, 일반 분만실 하나, 일반 산과 병동에 특실 가족분만실 등 네개나 되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분만실 구역내에 분만실이 있어야지 병실 한 가운데 가족 분만실을 만들어 놓았으니 진통 산모의 신음 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울 것이고, 소독, 태아 감시나 간호사의 동선이 길어 질 것이 뻔 한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누가 지시했다고 나에게 귀뜸하는 사람도 없었고, 나도 물어 보지 않았다.
구태여 누가 지시했는지 물어 보지 않아도 될 만큼 눈치도 생겼다.
졸지에 일반 진통실 포함, 분만실이 4개나 생겼다. 수술실은 4개나 있다. 이정도면 한달에 150건의 분만을 할 수 있는 규모인데, 그렇다면 산부인과에서만 거의 40 병상을 운영해야하고, 한국식으로 어림잡이 계산한다면, 하루 외래는 200명이상을 봐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능한 일이 아니다.
IMC 병원의 총 병상 수는 92개이다. 의사는 60명인데, 산부인과 의사는 6명이다.
산부인과 의사의 수준은 한국에서 산부인과 전공의 6개월에서 일년 수료한 정도의 실력으로 보인다.
초음파 진단 검사가 아주 약하고, 러시아 의학으로 교육을 받아 선진 의학과는 거리가 있고, 사회주의 제도하의 공공 의료체계이기 때문에 환자 써비스가 불 충분하다.
의료 장비의 부족과 의료 체계 미흡, 의과 대학 교육 및 수련 제도의 미비, 교수 자질 및 수 부족, 정부의 간섭 등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엮여 현재의 낙후된 몽골 의료가 되었다.
개원 한지 4개월이 더 지난 현재 하루에 산부인과 외래 환자는 평일 평균 15명이다.
과장을 제외한 5명이 돌아가며 야간 당직을 하고, 부인과 수술은 일주일에 하나 정도, 분만은 한달에 제왕절개 수술 포함 15건 정도이다.
임상을 전혀 모르는 IMC 행정 수뇌부가 결정한 한 예이다.
나의 자문이 소용없었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문화와 특성을 익히는데 일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2013년 9월 개원 예정,
12월 개원 예정,
2014년 3월 개원 예정,
드디어 5월 7일 가 개원,
5월 30일 정식 개원 예정,
8월 정식 개원 예정,
드디어 2014년 9월 22일 정식 개원 예정이다.
이번은 연기하지않고 정식 개원을 할 것 같다.
2014년 10월 31일이 고대의료원과 계약 만료 시점이다.
그동안 휴가 남은 기간이 나는 13일, 간호부장은 22일 남았다.
10월 초까지 일하고 휴가 처리하면, 실제 몽골을 떠나게 될 것이다.
정식 개원하고 환자들이 올 만하니 몽골을 떠나게 되었다.
큰 다행이다.
나는 IMC 병원 정식 개원을 못 보고 귀국 할 줄 알 았다.
돌이켜 보니,
착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대부분의 몽골인을 만난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영민한 젊은 의사들과 함께 공부하고 수술하면서 의학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너른 풀 밭의 유목민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음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의사로써 나를 필요로 하는 의료 취약 지역에서 일 할 수 있었음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60대의 삶을 이곳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시작 할 수 있었음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같은 목적의 고려대 의료원 식구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음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많은 이들을 이 곳에서 만났음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과 믿음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생각을 낳을 추억을 갖고,
이제 떠날 것이다.
'2013 몽고 IMC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ongolian Health Facts, 27Sep2014. (0) | 2014.09.27 |
---|---|
One year in Mongolia, 20Sep2014. (0) | 2014.09.20 |
Mongolian August, 6Sep2014. (0) | 2014.09.06 |
Mongolian July, 6Sep2014. (0) | 2014.09.06 |
Mongolian Cuisine, 6Sep2014. (0) | 2014.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