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부터 8월 10일까지 아내의 친한 후배인 범선생과 그 남편이 몽골 여행을 왔다. 소아과 연수강좌를 다니면서 친해져서 함께 모여서 책도 내고, 교수들 초빙해서 과외 공부도 하면서 오육년 열심히 하더니만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공부보다는 여행 쪽으로 방향 선회를 한 느낌이다. 그래도 사는 곳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출신학교도 다른데, 열명에 가까운 멤버가 십여년 이상을 친하게 지내는 걸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남편인 박 교수는 전남대 화순 병원에서 위암 전문외과의사로 근무 중이다.
키가 190 정도에, 두주 불사, 과묵하면서도 사이 사이 들려주는 유머는 여행 내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앉기만 하면 맥주, 보드카, 마유주, 위스키등 청탁을 가리지 않았고, 음식 또한 가리질 않아 편했다.
시내 관광과 테를지 국립 공원은 집사람이 안내를 했고, 나는 금요일 하루 휴가내서 UB에서 250Km 정도 떨어진 '하라호룸'과 '바양 고비'를 일박 이일로 함께 다녀 왔다.
몽골 제국의 마지막 수도, '하라호룸', 궁과 사찰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엄청난 규모를 알게 해 주는 벽과 절이 몇개 을씨련스럽게 남아 있다.
천도한 도시는 북경.
역사에, 인생살이에 'if'라는 가정은 필요 없다지만, 북경으로 수도를 안 옮겼다면 몽골 제국이 좀 더 오래 갔을까?
1300년대 중반 건설 됐다고 알려진 사찰들.
바양 고비, 사진을 모래 언덕위에서 찍었다. 실제 사막은 아주 작아서, 마치 고기집의 맛보기 냉면 같은 느낌.
8월 16일부터 8/17 병원 야유회.
8월 두번째 토요일은 국가에서 정한 의료인의 날이라고 한다. 의료직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한 날이다. 병원에서는 셋째 토요일에 공항 근처의 '게르' 촌을 빌려 IMC 병원 직원들에게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약 150명의 직원이 참석, 8개 조로 나눠 일박 이일 동안 몽골 전통의상 경연, 나담축제 경기(활쏘기, 씨름 대신 팔씨름, 말타기 대신 무등태우기 등), '호르혹', 보드카와 맥주, 마유주, 잔디밭에서 댄스파티등으로 밤 늦도록 놀았다. 늦게 일어나 아침 식사 후 해산.
징키스 칸으로 분장한 마취과 의사 Saranbaatar, 황후 역의 Dr. Undral.
'영광이옵나이다, 폐하!'
IMC 병원 산부인과의사 중 제일 젊은 Dr, Checky.
몽골 전통의상 콘테스트,
말타기 대신 손 잔등에 태워서 달리기.
8월 16일 부터8월 20일 조수훈선생 식구가 왔다. 9살, 세살 아들 둘과 부인과 함께.
병원 야유회와 겹쳐서 16일 밤 10시에 야유회를 나와 공항에서 픽업해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주말은 시내 관광, 쇼핑, 자이산 승전탑, 이태준 기념 공원등 보고,
테를지 국립공원은 현재 몽골에 거주 중인, 조선생의 산부인과 의국 2년 선배인 정수경 선생이 안내를 해 주었다.
나는 8월 19일 화요일 근무 후 테를지가서 함께 저녁먹고 수요일 이른 아침에 직접 출근을 했다.
수요일 저녁, 또 하나의 UB 맛집인 인도 식당 '나마스테'에서 작별 저녁 식사를 목교수, 정수경 선생네 식구, 산부인과 장항용 교수, 외과 허정민 교수, 김 간호부장과 조선생 식구등 많은 사람들과 했다.
자이산 승전탑.
이태준 기념공원.
수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조선생 가족과 함께.
조선생은 내가 첫번째 주례를 선 제자이다. 화목하게 잘 살고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8월 19일부터 8월 20일.
조선생 식구는 전 날부터 테를지에서 정선생네와 먼저 와 있었고, 나는 아내는 목교수와 일 끝내고 테를지에7시 쯤 도착하였다. 저녁을 미리 '호로혹'을 주문했는데, 양고기를 좋아하는 목교수는 '호르혹'이 맛있다며 잘 먹었다. 여름 한 철 장사라 '게르'를 구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게르' 두개 빌려서 하나는 조선생, 목교수, 나, 이렇게 남자끼리, 하나는 아내와 조선생 부인, 애들이 썼다.
대학을 졸업하고 펠로우 생활을 할 때 목교수를 만났다. 목교수는 대학 동기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서로 잘 모르고 지냈는데, 고대 여주 병원에서 만나 친해 지기 시작 했다. 목교수 부인까지 대학 동기라 친하게 되니 격의 없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몽골에 간다고 하니 왜 가느냐고 말렸다.
한번 가 보겠다, 도와 달라 했더니 한마디 했다.
그래, 알았어!
소아과 정지태 교수와 함께 그렇게 몽골에 한달에 사일씩 와서, 강의도 하고, 자문의사 역활을 해 주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어떤 '게르'에서건, 하루라도 재워 주고 싶었다.
테를지라도 한번 오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일이 생겨 목교수는 올 수 없었다.
이번이 목교수의 마지막 몽골 IMC 병원 방문이다.
조선생 식구와 겹치긴 했지만 어떤가?
내 제자라면 목교수 제자이기도 하지.
게르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을 맞았다.
목교수, 애 많이 썼어! 고맙네.
만나고 헤어져 보면, 남아 있는 입장이 될 때 힘이 들었다.
가는 사람은 새로운 삶의 준비로 항상 바쁘고, 남은 사람은 간 사람 정리를 하다 보면 허전 했다.
런던에 아내와 애들을 남겨 놓고 올 때 그랬고, 서울에서 아내와 애들을 런던으로 보낼 때 그랬다.
생전에 내 부모도 그랬을 것이다.
8월 25일부터 열흘간 휴가를 냈다.
아내도, 나도, 쉬고 싶었다.
'2013 몽고 IMC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One year in Mongolia, 20Sep2014. (0) | 2014.09.20 |
---|---|
One year in IMC, 12Sep2014. (0) | 2014.09.12 |
Mongolian July, 6Sep2014. (0) | 2014.09.06 |
Mongolian Cuisine, 6Sep2014. (0) | 2014.09.06 |
Delicious UB II, 26Jul2014. (0) | 2014.07.26 |